의료사고 손해배상 소송이란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환자 측이 의료인·의료기관을 상대로 배상받으려는 소송이다. 청구 자체는 일반 손해배상 법리를 따르지만(민법 제390조·민법 제750조), 의료행위의 전문성과 폐쇄성 때문에 증명책임·감정·분쟁 해결 절차에서 다른 손해배상 소송과 다른 쟁점이 생긴다.
쉽게 말하면 — 의료사고 소송이 어려운 이유는 법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환자 쪽에서 밝히기가 유난히 어려워서입니다. 그래서 법원은 증명책임을 완화해 주고, 진료기록을 강제로 받아낼 방법과 조정을 먼저 거칠 수 있는 절차를 따로 마련해 뒀습니다.
청구원인을 불법행위와 채무불이행 중 무엇으로 고르나
진료계약이 있는 환자는 의료과실을 채무불이행(민법 제390조)으로도, 불법행위(민법 제750조)로도 구성할 수 있다. 하나의 의료사고가 진료계약 위반이면서 동시에 생명·신체에 대한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런 경우 권리자가 유리한 쪽을 선택해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82다카1533 전원합의체. 해상운송 사안에서 선언된 일반 청구권 경합 법리다). 의료 사안에서도 대법원은 의료행위의 책임을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 어느 쪽으로도 물을 수 있음을 전제한다(94다39567 판결요지 가).
소멸시효와 유족의 청구권
두 구성의 실익 차이는 소멸시효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불법행위 구성이면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안에 청구해야 한다(민법 제766조). 채무불이행 구성에서는 별도 시효 특칙이 없는 일반채권에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민법 제162조 제1항, 소멸시효). 다만 국가가 진료계약상 손해배상채무자라면 시효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규정이 없는 한 5년이다(국가재정법 제96조 제1항·제2항). 지방자치단체가 진료계약상 손해배상채무자인 경우에도 시효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5년이다(지방재정법 제82조 제1항·제2항). 공공병원이라는 명칭만으로 이 5년 시효가 적용된다고 단정하지 말고, 실제 진료계약 당사자가 국가·지자체인지 별도 법인인지 확인해야 한다. 일반채권의 10년 시효에는 불법행위의 단기 3년이 없고, 채무불이행 청구의 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민법 제166조 제1항)부터 진행한다. 반대로 채무불이행 구성의 청구권은 진료계약 당사자(환자 본인)에게만 발생하므로, 환자가 사망한 사고에서 유족 자신의 고유한 위자료(민법 제752조)를 구할 때는 불법행위 구성이 필요하다. 다만 환자에게 이미 발생한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청구권 자체는 상속의 대상이 되므로, 상속인이 환자로부터 물려받은 청구권을 채무불이행으로 구성해 행사하는 것은 가능하다.
청구원인을 고르기 전에 실제 진료계약 당사자와 적용되는 시효 기간·기산점을 확인합니다(국가재정법 제96조·지방재정법 제82조·민법 제166조). 채무불이행이라도 국가·지자체가 계약상 배상채무자라면 다른 법률에 시효 규정이 없는 한 5년이므로, 공공병원 명칭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별도 법인인지도 확인합니다. 환자가 사망해 유족이 자기 몫의 위자료까지 받고 싶으면 불법행위 구성을 함께 검토합니다. 두 구성을 함께 청구하고 법원 판단에 맡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누구를 상대로 청구하나
진료한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가 다르면, 청구 상대를 정하는 문제가 따로 생긴다. 불법행위 구성에서는 과실 있는 의료인 본인이 배상책임을 지고(민법 제750조), 그를 고용해 진료 사무에 종사하게 한 개설자(의료법인·개인 개설의)는 피용자가 사무집행에 관하여 가한 손해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진다(민법 제756조 제1항). 개설자가 피용자의 선임과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한 때, 또는 상당한 주의를 하여도 손해가 있을 경우에는 면책된다는 단서가 있다(같은 항 단서).
채무불이행 구성에서는 진료계약의 당사자가 통상 의료기관 개설자이므로 개설자가 채무자가 된다. 실제 진료한 근무 의료인의 고의·과실은 이행보조자의 고의·과실로서 채무자인 개설자의 것으로 본다(민법 제391조).
병원에서 사고가 났다면 “수술한 의사”와 “병원을 운영하는 쪽”이 다를 수 있습니다. 계약 위반으로 따지면 상대는 병원 운영자이고, 불법행위로 따지면 의사 본인과 병원 운영자 양쪽에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의료과실을 어떻게 증명하나
증명을 보기 전에 무엇이 과실인지부터. 의료과실은 진료 당시 이른바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의료수준은 통상의 의료인에게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이지, 해당 의사나 의료기관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98다50586 판결요지 [1], 2022다219427).
일련의 의료행위 과실과 인과관계 추정
의료행위는 의사만 그 과정을 알 수 있고 치료 기법이 의사의 재량에 속해, 손해 발생의 직접 원인이 의료상 과실인지를 환자 측이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기는 극히 어렵다. 대법원은 이 특수성을 근거로 증명책임을 완화했다. 환자 측이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서 벌어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과실 있는 행위를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사정(의료행위 이전에 그런 결과의 원인이 될 건강상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 등)까지 증명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증명하면, 의료 측이 다른 원인으로 인한 것임을 반증하지 않는 이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한다(94다39567, 98다50586).
최근 대법원은 같은 취지를 더 다루기 쉬운 요건으로 다시 정리했다. 환자 측이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와, 그 과실이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만 증명하면 인과관계를 추정한다(2022다219427).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소극적 사정까지 증명할 필요 없이, 과실이 손해를 낳았을 개연성이라는 적극적 사정만 증명하면 되므로 환자 측의 증명 부담이 한층 가벼워졌다. 다만 인과관계 인정이 의학적 원리 등에 부합하지 않거나 그 과실이 손해를 발생시킬 막연한 가능성이 있는 정도에 그치면 증명됐다고 보지 않는다(2022다219427).
추정의 번복과 진료기록 변조의 효과
인과관계 추정은 절대적이지 않다. 의료 측이 손해가 진료상 과실과 무관한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음을 증명하면 추정은 번복된다(2022다219427). 반대로 의료 측이 진료기록을 변조하고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법원은 이를 입증방해행위로 보아 의료 측에게 불리한 심증 자료로 삼을 수 있다(94다39567). 다만 증명방해가 있다고 증명책임이 전환되거나 상대방 주장이 곧바로 증명된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고, 법원이 자유로운 심증에 따라 불리하게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2007다25971 판결요지 [2]).
“의사가 잘못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나”가 의료소송에서 가장 막막한 지점입니다. 법원은 환자에게 의학 전문가 수준의 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통상의 의료수준에 어긋난 구체적인 진료행위와 그로 인해 손해가 생겼을 개연성만 보이면 나머지는 병원 측이 해명하게 합니다.
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는 어떻게 다른가
지금까지 본 인과관계 추정은 치료 기법 자체의 과실을 다툴 때의 이야기다. 의사에게는 이와 별개로, 환자가 스스로 치료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미리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설명의무 위반은 치료 자체가 적절했더라도 독립적으로 문제 될 수 있는 쟁점이다.
의사는 수술 등 침습을 가하거나 나쁜 결과 발생의 개연성이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또는 사망 등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측되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에 질병의 증상·치료방법의 내용과 필요성·예상되는 위험 등을 설명해 환자가 그 의료행위를 받을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94다3421). 응급환자의 경우나 그 밖에 특단의 사정이 있으면 설명의무가 면제될 수 있지만(같은 판례), 후유증·부작용의 발생 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는 면제되지 않는다. 그 후유증이 해당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이 중대한 것이면, 발생 가능성이 낮아도 설명 대상이 된다(같은 판례). 설명의무 자체는 수술에 한하지 않고 검사·진단·치료 등 진료의 모든 단계에서 생긴다. 다만 환자에게 발생한 중대한 결과가 의사의 침습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거나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되지 않는 사항이면, 위자료 지급대상으로서의 설명의무 위반은 문제 되지 않는다(2007다25971). 설명을 들었더라도 어차피 동의했을 것이라는 가정적 승낙은 의사 측의 항변사항이고, 환자의 승낙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만 받아들여진다(94다3421 판결요지 라).
설명의무 위반은 무엇을 증명해야 하나
의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한 채 수술 등을 해 환자에게 사망 등 중대한 결과가 생긴 경우, 증명할 것은 무엇을 청구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선택의 기회를 잃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데 대한 위자료만 청구한다면, 설명이 없거나 부족해 선택의 기회를 잃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된다. 설명을 받았다면 사망 등의 결과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그 결과로 인한 모든 손해를 청구하려면, 중대한 결과와 설명의무 위반이나 승낙을 받는 과정의 잘못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설명의무 위반은 환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의료적 침습 과정에서 요구되는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동일시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94다3421 판결요지 바).
치료 자체는 의학적으로 맞게 했어도, 사전에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수술했다면 그것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설명만 부족했다”며 위자료만 구할 때와 “그 때문에 이 나쁜 결과가 생겼다”며 전체 손해를 구할 때는 증명해야 할 것이 다릅니다. 후자는 증명이 훨씬 어렵습니다.
손해배상 범위는 어떻게 정해지나
배상 범위의 산정 자체는 일반 손해배상 법리를 따른다. 치료비처럼 이미 지출했거나 앞으로 지출할 재산상 손해, 노동능력을 잃어 얻지 못하게 된 수입(일실수입), 위자료를 항목별로 계산한다. 의료소송에서 따로 문제 되는 것은 책임제한이다. 체질적 소인이나 질병의 위험도처럼 환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라도, 그 요인이 손해의 발생·확대에 기여했고 손해 전부를 의료 측에 배상시키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반하는 경우에 한해 과실상계 법리를 유추적용해 배상액 산정에서 참작할 수 있다(98다50586). 의료 측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이 참작으로 배상액이 줄어들 수 있다.
진료기록은 어떻게 확보하나
증명책임 완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애초에 진료 경과를 알아야 한다. 소를 제기하기 전이라도 진료기록이 변조되거나 없어질 우려가 있으면 증거보전을 신청해 미리 증거조사를 해 둘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375조). 소송에 들어간 뒤 환자 측이 가진 자료가 부족하면 법원에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해 병원이 보관한 진료기록·의무기록·간호기록을 제출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의료상 과실 유무와 인과관계는 의학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이라 감정 절차로 신체감정·진료기록감정을 촉탁하는 것이 실무의 기본이다. 감정촉탁 결과가 특정 시점의 처치 지연이나 처치 누락을 지적하면 인과관계 추정의 전제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지만, 그 자체로 자동으로 전제사실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다른 증거와 함께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심리해 그 사실을 인정해야 인과관계 추정의 전제가 된다.
병원과 직접 합의해도 되나
소송이나 조정을 거치지 않고 언제든 병원과 직접 합의할 수도 있다. 다만 합의는 화해 계약이라 한 번 성립하면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민법 제733조 본문). 의료사고는 시간이 지나 후유증이 커지는 일이 흔하다. 다만 합의가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후발손해가 합의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 예상이 불가능했으며, 이를 예상했다면 사회통념상 그 합의금액으로는 화해하지 않았을 만큼 그 손해가 중대하면 다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99다42797). 그러나 이 요건을 나중에 다투는 것 자체가 부담이므로 합의서에 예상 못한 후유증·후발 손해를 유보하는 문구를 두는 것을 검토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는 어떻게 이용하나
의료분쟁의 당사자나 그 대리인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고, 조정을 신청하지 않고 곧바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도 된다. 다만 조정과 소송을 동시에 진행할 수는 없다. 성립한 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고, 당사자는 조정부의 종국적 결정에 따르기로 서면으로 합의하고 중재를 신청할 수도 있다. 신청이 각하되는 경우, 신청 기간과 시효중단, 감정부·조정부의 절차, 성립 뒤의 형사 효과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 신청에서 설명하고, 불가항력 분만 사고 보상과 손해배상금 대불은 불가항력 분만 사고 보상과 손해배상금 대불에서 설명한다.
실무 체크포인트
- 청구원인을 불법행위·채무불이행 중 하나로만 좁히지 말고, 소멸시효 기산점과 유족 고유 위자료 필요 여부를 함께 확인한다(민법 제766조).
- 피고를 정할 때 진료계약 당사자인 개설자와 실제 진료한 의료인을 구분하고, 필요하면 함께 피고로 삼는 것을 검토한다(민법 제756조·민법 제391조).
- 진료기록 확보는 문서제출명령 신청이나 감정 촉탁으로 하되, 진료기록 변조 정황이 있으면 그 경위를 별도로 기록해 두고 소 제기 전이라면 증거보전 신청을 검토한다.
- 위자료 등 손해의 일부만 먼저 청구할 때는 일부청구임과 잔부 유보 취지를 소장에 명시한다. 의료사고 사안에서 유보를 명시하지 않은 위자료 청구에 기판력이 전부 미쳐 잔부청구가 막힌 예가 있다(2013다96165, 일부청구 후 잔부청구).
- 소송 전에 조정을 거칠지 정할 때 조정 신청의 시효중단 효력과 조정이 성립했는데도 지급받지 못한 경우의 대불 청구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 신청에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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