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이행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란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다(민법 제536조 제1항 본문).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같은 항 단서). 먼저 이행하여야 할 당사자도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같은 항 본문과 같다(같은 조 제2항).

쉽게 말하면 — 매도인은 “돈을 줘야 물건을 주겠다”, 매수인은 “물건을 줘야 돈을 내겠다”고 버틸 수 있습니다. 버티는 동안에는 약속을 어긴 것이 되지 않아 지연이자도 붙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내놓을 차례가 아직 오지 않았다면 버틸 수 없습니다.

언제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가?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같은 쌍무계약에서 생겨 서로 대가 관계에 있는 채무여야 하고,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에 있어야 하며(민법 제536조 제1항 단서), 상대방이 자기 채무의 이행을 제공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한 번 이행을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의 항변권이 소멸하지는 않는다. 이행제공이 곧 중지되어 계속되지 않는 기간에는 상대방의 의무가 이행지체에 빠졌다고 할 수 없다. 그 기간의 이행지체를 전제로 한 손해배상청구도 할 수 없다(98다13754 판결요지 [6]).

먼저 이행할 의무를 지는 사람에게도 거절권이 열린다. 선이행의무자는 상대방 채무의 이행기가 아직 오지 않았더라도 그 이행이 현저히 불투명해지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근거는 제536조 제2항과 신의칙이고, 반대급부의 이행이 확실해질 때까지 거절할 수 있다(98다13754 판결요지 [3]). 선이행의무자가 이행하지 않는 사이 상대방 채무의 이행기도 지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쌍방 의무는 동시이행 관계에 놓인다(같은 판례 판결요지 [4]).

상대방이 돈을 내밀고 있는 동안에는 버틸 수 없습니다. 다만 한 번 내밀었다가 거둬들이면 그 기간에는 다시 거절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줄 차례라도 상대방이 나중에 줄 것이 매우 불확실해졌다면 버틸 수 있습니다.

버티면 지체책임을 지지 않는가?

대가적 채무 사이에 이행거절의 권능을 가지면, 이행거절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더라도 그 권능의 존재 자체로 이행지체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98다13754 판결요지 [3]). 이 판시는 선이행의무자가 제536조 제2항과 신의칙에 따라 거절권을 가지게 된 사안에 관한 것이다.

준용이 아니라 공평의 관념으로 인정된 동시이행 관계에는 이 효과가 그대로 미치지 않는다. 예탁금제 골프회원권에서 예탁금 반환의무와 회원증 반납의무는 동시이행 관계다. 그러나 제536조가 정한 쌍무계약상의 대가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므로, 시설업자는 탈퇴 의사표시와 반환청구를 받은 때부터 이행지체책임을 진다(2013다100750 판결요지 [2]).

소송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피고가 동시이행의 항변을 하면 법원은 청구를 기각하지 않는다. 원고가 반대급부의 이행을 받음과 상환으로 이행할 것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98다13754 이유 중 판단).

항변을 물리치려는 쪽에 증명 부담이 있다. 매도인이 잔대금 지급의 동시이행항변을 한 경우, 매수인이 그 항변을 배제하려면 잔대금을 지급하였거나 이행을 제공하였음을 증명해야 한다(2012다65294 판시사항).

상환이행 판결을 받아도 집행 단계에서 같은 증명이 다시 필요하다. 채권자가 반대의무의 이행 또는 이행의 제공을 하였음을 증명하여야 집행을 개시할 수 있다(민사집행법 제41조 제1항).

어디까지 동시이행 관계로 보는가?

민법은 여러 곳에서 제536조를 준용한다. 계약 해제에 따른 원상회복의무(민법 제549조), 매도인의 담보책임 중 제572조부터 제575조·제580조·제581조의 경우(민법 제583조), 도급에서 하자보수에 갈음하거나 보수와 함께 하는 손해배상(민법 제667조 제3항)이 그렇다. 전세권이 소멸한 때에는 전세권설정자가 목적물의 인도 및 말소등기에 필요한 서류의 교부를 받는 동시에 전세금을 반환해야 한다(민법 제317조).

준용 규정이 없어도 판례는 공평의 관념에 따라 동시이행 관계를 인정한다. 임대차가 끝나면 임차인의 목적물 명도의무와,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연체차임 등을 청산한 나머지를 반환할 의무가 동시이행 관계다(77다1241 전원합의체). 임차인이 부속물매수청구권을 적법하게 행사하면 목적물 반환의무와 부속물 매매대금 지급의무도 동시이행 관계가 된다(2024다317332 판결요지 [1]). 부동산 매매에서 매수인의 잔대금지급의무와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 이행의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시이행 관계다(2012다65294 이유 중 법리).

동시이행의 항변권은 계약에서 생기는 채권적 항변이므로, 물권인 유치권처럼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다. 다만 채권이 양도되면 채무자가 이의를 보류하지 않고 양도를 승낙했는지, 양도통지만 받았는지 등에 따라 양수인에게 기존 항변으로 대항할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민법 제451조).

동시이행 관계가 아니거나 제한되는 경우는?

먼저 이행해야 하는 의무는 동시이행 관계가 아니다.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와 임차인의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에 따른 임차권등기 말소의무가 그렇다. 임차권등기는 이미 이행지체에 빠진 임대인에 대하여 임차인의 권리를 보전하려는 것이므로, 보증금 반환의무가 먼저 이행되어야 한다(2005다4529 판결요지).

거절할 수 있는 범위도 무제한이 아니다. 도급인의 하자보수청구권·손해배상청구권은 수급인의 보수지급청구권과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91다33056 판결요지 가). 그러나 하자가 있다는 것만을 이유로 하자보수나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은 채 곧바로 보수 지급을 거절할 수는 없다(같은 판례 판결요지 나). 하자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거절할 수 있는 것은 그 손해배상액에 상응하는 보수액뿐이다(같은 판례 판결요지 다).

신의칙도 한계가 된다. 임차인이 이행하지 않은 원상회복의무가 사소하고 그 손해배상액도 근소한 경우가 있다. 이때 임대인이 그를 이유로 거액의 잔존 보증금 전액의 반환을 거부하는 항변은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99다34697 판결요지 [1]). 32만 6,000원이 드는 전기시설 원상회복을 하지 않은 사안에서, 1억 2,522만여 원의 보증금 전액 반환 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다(같은 판례 판결요지 [2]).

버틸 수 있는 폭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공사에 하자가 있어도 손해배상액에 해당하는 만큼만 붙들 수 있고 잔대금 전부를 붙들 수는 없습니다. 임대인도 32만 원짜리 원상복구가 안 됐다는 이유로 1억이 넘는 보증금 전부를 붙들 수는 없습니다(99다34697 판결요지 [2]).

시효·상계·점유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가?

항변권이 붙어 있어도 채권 자체의 소멸시효는 그대로 진행한다. 매매대금 채권이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과 동시이행 관계에 있어도, 매도인은 지급기일 이후 언제라도 청구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금 채권의 시효는 지급기일부터 진행한다(90다9797).

임차인이 점유를 계속하는 경우는 결론이 다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대차에서 기간이 끝난 뒤 임차인이 보증금을 받으려고 목적물을 점유하고 있으면, 보증금반환채권의 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2016다244224 판결요지). 근거는 항변권 자체가 아니라, 그 점유가 보증금을 받으려는 계속적인 권리행사로 평가된다는 데 있다(같은 판례). 이 예외는 적법하게 점유하는 기간으로 한정되고, 점유하지 않거나 항변권을 잃어 정당한 점유권원이 없으면 인정되지 않는다(같은 판례).

상대방의 항변권이 붙은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삼아 상계할 수는 없다. 상계를 허용하면 일방의 의사표시로 상대방의 항변권 행사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2002다25242, 상세는 상계).

항변권을 행사해 점유만 유지했다면 부당이득은 생기지 않는다. 임차인이 반환을 거부하며 점유했으나 본래의 임대차계약상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하지 않아 실질적인 이득을 얻지 않은 경우가 그렇다. 이때는 임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더라도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성립하지 않는다(2002다59481 판결요지 [2]).

버틴다고 해서 받을 돈의 소멸시효까지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받아 그 집에 그대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보증금 채권의 시효가 진행하지 않습니다. 집을 비우거나 버틸 근거를 잃으면 그때부터는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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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법무사

신우법무사

법무사 김정걸은 1994년 제2회 법무사시험에 합격해 32년간 법무사 업무를 해 왔습니다. 1984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외국인 상속등기 · 한정승인 · 상속포기, 상속관련 소송 · 비송, 회사등기, 강제집행 등을 주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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