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변

항변(抗辯)이란 상대방의 청구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그 법률효과의 발생을 저지하거나 소멸시키는 별도의 사실을 주장하는 방어 수단이다.

쉽게 말하면 — 상대방이 “나에게 돈 갚아”라고 청구했을 때, “그 사실은 맞지만, 당신도 나에게 돈을 줘야 하니까 먼저 줄 때까지는 안 줘도 된다”고 맞서는 것입니다. 상대방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면서도 내 이유로 막는 것이 항변입니다.

항변은 부인(否認)과 어떻게 다른가

부인은 상대방이 주장하는 사실 자체를 다투는 것이다. 항변은 그 사실을 인정하되 별도의 사실을 내세워 권리 발생을 막거나 이미 생긴 권리를 소멸시킨다.

예컨대 원고가 “대여금 1,000만 원을 갚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은 부인이다. “맞다, 그러나 이미 변제했다”거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하는 것이 항변이다.

항변과 부인은 증명책임에서도 갈린다. 항변사실은 그것을 주장하는 피고가 증명책임을 진다(법률요건분류설). 반면 부인은 상대방(원고)이 증명책임을 지는 사실을 다투는 것이어서, 부인하는 쪽이 따로 증명할 책임을 지지 않는다(증명책임). 이것이 부인과 항변을 구별하는 핵심 실익이다.

부인은 “그런 일 없었습니다”이고, 항변은 “그건 맞지만 저한테는 따로 이유가 있습니다”입니다.

항변의 주요 종류

항변은 권리의 행사를 요하는지에 따라 권리항변과 사실항변으로 나뉜다. 동시이행·최고검색·시효원용처럼 권리의 행사(원용)를 주장해야 효과가 생기는 것이 권리항변이고, 변제·면제처럼 사실 주장만으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항변이다. 권리항변은 당사자의 원용이 있어야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

동시이행의 항변권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민법 제536조). 상대방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않은 때에는 이를 주장할 수 없다.

선이행 의무가 있는 당사자도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으면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불안의 항변권, 민법 제536조 제2항). 동시이행의 항변권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준하는 별도의 항변이다.

부동산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하지 않고 소유권이전등기를 요구하면, 매도인은 “잔금 주면 등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버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동시이행의 항변권입니다.

상계의 항변

채무자가 자신의 반대채권으로 상대방 채권과 대등액에서 소멸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민법 제492조). 상계는 의사표시로 하며, 소송 중에 항변으로 제출하면 법원이 심리한다. 상계 항변이 인용되면 그 범위에서 청구가 기각된다.

상계 항변은 다른 항변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 판결 이유 중의 판단에는 보통 기판력이 없지만, 상계를 주장한 반대채권의 성립 여부 판단에는 예외적으로 상계로 대항한 액수에 한해 기판력이 미친다(민사소송법 제216조 제2항). 그래서 상계는 다른 항변이 모두 배척된 뒤 최후에 판단되는 예비적 항변으로 제출되는 경우가 많다.

원고가 100만 원을 청구할 때 피고도 원고에게 70만 원 채권이 있다면, “상계하면 30만 원만 남는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

채무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소멸시효). 시효완성은 법원이 직권으로 고려하지 않고 당사자의 항변이 있어야 판단한다. 시효이익을 받을 사람이 이를 원용(주장)해야 비로소 법원이 고려하는 권리항변이다(변론주의).

보증인의 항변권

보증인은 주채무자의 항변 사유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민법 제433조 제1항). 주채무자가 항변을 포기해도 보증인에게는 효력이 없다(민법 제433조 제2항).

보증인은 채권자가 이행을 청구할 때 먼저 주채무자에게 청구하고 그 재산에 집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를 최고·검색의 항변권이라 한다(민법 제437조). 연대보증인에게는 이 권리가 없다(연대보증).

일반 보증인은 “먼저 주채무자 재산에 집행해 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연대보증인은 이런 항변을 할 수 없고 바로 갚아야 합니다.

관할위반의 항변 (본안 전 항변)

관할위반의 항변은 본안에 대한 방어가 아니라 소송요건을 다투는 본안 전 항변(방소항변)이라, 아래 본안 항변의 3분류와는 층위가 다르다. 피고가 제1심 법원에서 관할위반이라는 항변을 하지 않고 본안에 관해 변론하면 그 법원에 관할이 생긴다(변론관할, 민사소송법 제30조). 따라서 관할위반 항변은 본안 변론 전에 주장해야 효력이 있다.

항변의 분류와 효과

본안 항변은 실체법상 효과에 따라 셋으로 나뉘며, 이 분류는 증명책임의 법률요건분류설과 연결된다(증명책임).

  • 권리장애 항변(통정허위표시·강행법규 위반 등 무효사유): 권리 발생을 처음부터 막는다.
  • 권리소멸 항변(변제·상계·소멸시효): 이미 발생한 권리를 소멸시켜 청구가 기각된다.
  • 권리저지 항변(동시이행·최고검색·기한유예): 권리행사를 일시적으로 막는다. 상대방의 이행 전까지 자신의 이행을 잠정 거절할 수 있을 뿐, 청구 자체가 기각되지는 않는다(상환이행판결 등).

관할위반 같은 본안 전 항변은 인용되면 소송 이송 또는 각하 사유가 된다.

항변은 효과에 따라 셋입니다. ① 권리가 처음부터 안 생기게 막거나(장애), ② 이미 생긴 권리를 없애거나(소멸), ③ 잠시 행사를 막습니다(저지). 앞 둘은 청구가 기각되고, 셋째는 “상대가 먼저 이행하면 나도 한다”는 식으로 잠정 거절에 그칩니다.

실무 체크포인트

  • 동시이행의 항변을 주장하는 피고는 “원고가 의무를 이행하는 동시에 지급한다”는 조건부 판결(상환이행판결)을 받을 수 있다. 무조건 기각이 아니다.
  • 상계 항변은 자동채권이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채권 존재가 다투어지면 법원이 자동채권의 성립부터 판단한다.
  • 소멸시효 항변은 주채무자가 포기할 수 있으나, 그 포기는 보증인에게 효력이 없다(민법 제433조 제2항). 보증인은 독자적으로 시효 항변을 주장할 수 있다.
  • 최고·검색의 항변권은 보증인이 주채무자의 변제자력과 집행 용이성을 증명해야 행사할 수 있다(민법 제437조). 증명 없이 주장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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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법무사

신우법무사

법무사 김정걸은 1994년 제2회 법무사시험에 합격해 32년간 법무사 업무를 해 왔습니다. 1984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외국인 상속등기 · 한정승인 · 상속포기, 상속관련 소송 · 비송, 회사등기, 강제집행 등을 주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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