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가 채권의 실현을 방해하여 손해를 입혔더라도 곧바로 불법행위책임이 생기지는 않는다. 채권자를 해친다는 사정을 알면서 법규나 선량한 풍속·사회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는지, 그 행위와 손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2016다10827 판결요지 [1], 2006다9446 이유 1).
쉽게 말하면 — 거래 상대방 밖의 사람이 끼어들어 돈을 받거나 계약을 이행받기 어려워진 경우입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거래하거나 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묻지는 않고, 어떤 방법으로 내 권리를 침해했는지와 그로 인해 생긴 손해를 함께 봅니다.
어떤 경우에 불법행위책임이 생기나?
채권자를 해친다는 사정을 알면서 위법한 방법으로 채권의 실현을 방해하는 등 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하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채권에 일반적으로 배타적 효력이 없고 거래상 자유경쟁이 허용된다는 점과, 그 경쟁도 공정하고 건전해야 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한다(2016다10827 판결요지 [1]).
위법성은 침해된 채권의 내용, 행위의 방법, 침해자의 고의나 해의 등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살펴 판단한다. 거래자유를 보장할 필요, 경제·사회정책적 요인을 포함한 공공의 이익, 당사자 사이의 이익 균형도 고려한다(2006다9446 판결요지 [1]). 불법행위의 일반 근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와 손해를 요건으로 하는 민법 제750조다.
다른 계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책임을 지나?
서로 독립한 경제주체 사이의 경쟁적 계약관계에서는 다른 계약의 내용을 알면서 그에 어긋나는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고의·과실과 위법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채무자와의 적극 공모, 기망·협박 등 사회상규에 반하는 수단, 채권자를 해할 의사로 계약을 체결한 특별한 사정 등을 확인해야 한다(99다38699 판결요지 [3]).
주유소 운영자가 다른 정유업체의 제품을 판매하게 된 사건에서, 원심은 기존 정유업체와의 관계 악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권고, 도로공사 자체의 계약체결 판단 등을 살펴 적극 공모나 위법한 수단·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한 이 판단을 정당하다고 보았다(99다38699 판결요지 [4], 이유 2.다). 계약의 존재를 알았는지와 경쟁의 수단이 위법했는지는 구별되는 판단이다.
추심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별도 손해배상책임도 생기나?
추심금 지급을 거절했다는 이유만으로 집행채권자에 대한 불법행위책임까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급거절의 위법성과 그로 인한 손해의 상당인과관계를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2006다9446 이유 1).
대법원은 회사정리절차 개시가 임박한 집행채무자의 제3채무자가 추심금을 지급하지 않던 중 추심명령이 취소되고 집행채권이 감액된 사건을 판단했다. 구 회사정리법상 집행 중지·취소와 부인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지급거절을 위법한 채권침해로 보거나 채권 감액 등의 손해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2006다9446 판결요지 [2], 이유 1).
이 판결은 추심금 지급의무 자체를 없앤 판단은 아니다. 대법원은 추심명령만으로 제3채무자에게 당연히 지급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원심의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한 결론에는 영향이 없다며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2006다9446 이유 1, 주문).
자금 인출을 막고 자기 채권부터 회수하면 어떻게 되나?
자금 인출을 통제하는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채권자의 변제를 막고 자기 채권을 먼저 회수한 행위는 그 구체적 사정에 따라 위법한 채권침해가 될 수 있다. 법률상 우선변제권 유무와 인출 권한의 사용 방법을 함께 살펴야 한다(2016다10827 판결요지 [2]).
상가 분양사업의 시공사는 관리계좌 인출에 동의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시행사가 수분양자에게 합의해제에 따른 해약금을 반환하려고 동의를 요청했으나, 시공사는 동의하지 않고 자기 공사대금을 계속 인출하여 계좌 잔고가 부족해졌다(2016다10827 이유 1).
원심은 시공사가 반환채권이 침해됨을 알면서 수분양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우선변제권이 없는 공사대금을 먼저 추심한 행위를 위법하다고 보았다. 이 사건 선분양 개발사업에서 거래의 공정성과 건전성을 침해한 행위라며 해약금 상당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고, 대법원은 이를 정당하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했다(2016다10827 이유 2, 주문).
법인 내부 의결에 찬성한 사람도 함께 책임지나?
법인 내부 의결에 찬성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3자의 채권을 침해한 불법행위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표자와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하거나 가담했다고 볼 사정이 있는지는 의결 권한, 집행을 견제할 위치, 적극적인 요구·유도, 실제 영향력과 의결 내용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2006다37465 판결요지 [4]).
대법원은 구 토지구획정리조합 사건에서 가처분을 위반한 체비지 처분을 실행한 조합장과 협의하여 가담한 상임이사·감사의 책임을 인정한 부분을 유지했다. 반면 단순 승인이나 집행부 일임 정도의 의결을 한 대의원·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한 부분은 파기환송했다. 조합장 등의 책임도 가처분 전 일부 처분과 이후 처분을 구별했으므로, 임원의 직함만으로 책임 범위를 정한 판결은 아니다(2006다37465 이유 1.나·다, 주문).
민법상 법인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이 인정되어도 대표자 자신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으며, 공동불법행위자는 연대책임을 진다(민법 제35조 제1항, 같은 법 제760조 제1항). 다만 법인의 목적범위 밖의 행위로 손해를 가한 경우에는 그 사항의 의결에 찬성하거나 집행한 사원·이사·대표자의 연대배상을 정한 별도 규정이 있다(같은 법 제35조 제2항).
못 받은 채권액 전부가 손해액인가?
채무자의 재산을 은닉한 채권침해에서는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회수할 수 있었던 채권액이 손해의 기준이다. 불법행위 당시 책임재산과 부담 채무를 비교했을 때 원래 회수할 수 없었던 부분에는 침해행위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2017다229338 이유 1).
대법원은 채무자의 친족이 자기 계좌를 제공해 채무자의 자금을 은닉한 사건에서, 채권침해를 인정하면서도 손해 발생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배척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그 사건의 최종 불법행위일을 기준으로 실제 회수 가능액을 심리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당시 이미 이행기가 지난 채무는 채권자가 종국적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비교대상 채무에 포함된다(2017다229338 이유 1·3·4, 주문).
제3자의 배상채무가 성립한 뒤 채무자가 파산했다는 사정만으로 그 제3자에 대한 권리행사가 막히는 것도 아니다. 위 사건에서는 파산관재인이 은닉재산에 대해 부인권을 행사할 여지가 있다는 점도 제3자에 대한 권리행사나 손해액 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2017다229338 이유 3.다).
불법행위 손해배상에도 통상·특별손해의 범위와 과실상계 규정이 준용된다. 특별한 사정으로 생긴 손해는 가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배상책임이 있다.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으면 법원은 책임과 배상액을 정할 때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민법 제763조, 같은 법 제393조, 같은 법 제396조).
손해배상 외에 방해를 직접 없애 달라고 할 수 있나?
채권이 사실상 침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제3자에게 직접 시설 철거나 판매금지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유소 사건에서는 계약으로 취득한 석유제품공급권이 대세적 효력이 없는 채권이라는 이유로 직접 방해배제청구를 배척했다(99다38699 판결요지 [2], 이유 2.나).
다만 채무자가 가진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채권자대위권은 별도로 판단한다. 대법원은 위 사건에서 특정채권의 보전을 위한 대위를 일부 유형에만 한정한 원심이 잘못되었다며 대위청구 부분을 파기환송하고, 직접 방해배제와 불법행위 손해배상에 관한 나머지 상고는 기각했다(99다38699 판결요지 [1], 이유 2.가, 주문). 채권침해를 이유로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지, 채무자의 권리를 대위하는지에 따라 근거가 달라진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했다면 채권자취소권에 따른 취소와 원상회복도 검토한다. 다만 수익자가 그 행위 당시 또는 전득자가 전득 당시 채권자를 해함을 알지 못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취소할 수 없다. 취소의 소는 취소원인을 안 날부터 1년, 법률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 내에 제기해야 한다(민법 제406조). 취소와 원상회복은 모든 채권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같은 법 제407조).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는 언제부터 진행하나?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한다.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난 때도 같다(민법 제766조 제1항·제2항).
손해와 가해자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피해가 의심된다는 정도가 아니라, 위법한 가해행위·손해·인과관계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을 뜻한다. 손해를 안 시기의 증명책임은 시효완성으로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쪽에 있다. 자금 인출을 막은 시공사 사건에서 원심은 인출예정일의 기재나 동의 거부에 대한 추정적 인식만으로는 이러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시효 항변을 배척했고, 대법원은 이를 유지했다(2016다10827 이유 3). 계약 상대방에게 청구하는 채무불이행책임의 시효와는 구별하여 확인해야 한다.
단기소멸시효에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한다는 일반 규정도 적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권리행사의 객관적·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개인적 사정이나 권리의 존재·행사 가능성을 몰랐다는 사정만으로 진행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민법 제166조 제1항, 2023다285162 다수의견 이유 2.가2~4).
실무 체크포인트
- 제3자가 알고 있던 계약 내용과 실제 사용한 수단을 구분해 자료를 확보한다(99다38699 판결요지 [3]).
- 의결 참여자의 직함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요구·유도와 실제 집행에 미친 영향을 확인한다(2006다37465 판결요지 [4]).
- 재산은닉 사건에서는 불법행위 당시 책임재산·채무와 회수 가능성을 대조한다(2017다229338 이유 1).
- 손해와 가해자를 현실적·구체적으로 알게 된 경위와 시점을 확인한다(2016다10827 이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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