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이란 법률행위의 효력이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을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에 매어 두는 부관이다. 민법은 조건을 정지조건과 해제조건으로 나누어 그 효력을 정한다. 정지조건 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기고, 해제조건 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을 잃는다(민법 제147조 제1항·제2항).
쉽게 말하면 — “시험에 합격하면 준다”처럼 일어날지 아직 모르는 일에 계약의 효력을 걸어 두는 약속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야 비로소 효력이 생기는 것이 정지조건이고, 그 일이 일어나면 이미 생긴 효력이 사라지는 것이 해제조건입니다. 효력이 생기거나 없어지는 시점은 조건이 이루어진 때부터입니다. 계약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으므로, 거슬러 올리고 싶으면 당사자가 그렇게 하겠다고 따로 정해 두어야 합니다.
조건이 성취되면 언제부터 효력이 생기는가?
효력은 조건이 성취한 때부터 움직인다(민법 제147조 제1항·제2항). 소급효는 원칙이 아니다. 당사자가 조건성취의 효력을 그 성취 전에 소급하게 할 의사를 표시한 때에만 그 의사에 따른다(같은 조 제3항).
정지조건이 성취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되면 법률행위의 효력은 생기지 않는다. 대법원은 아직 이혼하지 않은 당사자가 장차 협의상 이혼할 것을 약정하면서 이를 전제로 한 재산분할 협의를 조건부 의사표시로 보았다(2001다14061 판결요지). 협의상 이혼이 이루어지지 않고 혼인관계가 존속하거나 재판상 이혼이 이루어진 경우, 그 협의는 조건의 불성취로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같은 판례).
해제조건은 반대로 이미 생긴 효력을 없앤다. 약혼예물의 수수는 혼인의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유사한 성질을 가진다(96다5506 판결요지). 가집행선고부 판결에 따른 변제의 효력도 상소심에서 그 가집행선고나 본안판결이 취소되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하여 발생한다(80다2626 판결요지 나).
조건과 기한은 무엇이 다른가?
기한은 언젠가 반드시 오는 사실에 효력을 매어 둔 것이라는 점에서 조건과 다르다. 시기 있는 법률행위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기고, 종기 있는 법률행위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그 효력을 잃는다(민법 제152조). 기한을 정했을 때 누가 어떤 이익을 갖는지는 기한의 이익에서 다룬다(민법 제153조).
구별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 올지 여부가 아니라 올 시기만 불확실한 경우다. 대법원은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사실이 발생한 때뿐 아니라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한이 도래한 것으로 보았다(2017다205127 판결요지 [2]). 나아가 부관으로 정한 사실의 실현이 주로 변제하는 사람의 성의나 노력에 좌우되고 채권자가 그 실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기간 안에 사실이 발생하지 않으면 이행기한이 도래한다(같은 판례).
조건과 기한은 준용 범위도 같지 않다. 제148조와 제149조는 기한 있는 법률행위에 준용된다(민법 제154조). 반면 제150조의 반신의행위 규정은 준용 대상에 들어 있지 않다.
받을 돈에 단서가 붙어 있으면 그 단서가 조건인지 기한인지부터 봅니다. 정지조건이면 그 일이 끝내 일어나지 않을 때 효력이 아예 생기지 않아 청구할 수 없습니다. 기한이면 늦어질 뿐이라서 언젠가는 청구할 수 있습니다. “돈이 생기면 갚겠다”처럼 상대의 노력에 달린 약속은 기한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사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확정되거나 합리적인 기간이 지나면 청구할 수 있습니다.
조건이 정해지지 않은 동안 권리는 보호되는가?
조건 있는 법률행위의 당사자는 조건의 성부가 미정한 동안에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생길 상대방의 이익을 해하지 못한다(민법 제148조). 조건의 성취가 미정한 권리의무는 일반규정에 의하여 처분, 상속, 보존 또는 담보로 할 수 있다(민법 제149조). 조건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권리를 넘기거나 담보로 잡히는 것이 막히지 않는다.
담보로 삼는 것도 이 범위에 든다. 대법원은 장래에 발생할 특정의 조건부 채권이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으로 확정될 수 있는지를 적극으로 판단했다(2015다200531 판시사항 [1], 참조조문 민법 제148조·제149조). 이 판결에는 판결요지가 수록되어 있지 않아 판시사항 층위로 적는다. 도산절차와 강제집행에서 조건부채권을 얼마로 다루는지는 조건부채권에서, 집행문 부여의 요건인 조건은 조건부 집행권원에서 다룬다.
효력이 아직 생기지 않은 상태는 시효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지조건 미성취는 소멸시효 진행을 막는 대표적인 법률상 장애다(민법 제166조, 80다2626 판결요지 가). 다만 대법원은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3년 단기소멸시효에서는 권리행사의 객관적·합리적 기대가능성을 궁극적 판단 기준으로 삼아, 통상적인 의미의 법률상 장애가 아니어도 그 기대가능성을 부정할 사유가 있으면 시효가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시했다(2023다285162 판결요지 [1]). 자세한 것은 소멸시효에서 다룬다.
상대방이 조건 성취를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가?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에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민법 제150조 제1항). 반대로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을 성취시킨 때에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하지 아니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같은 조 제2항). 조문은 상대방에게 주장할 수 있는 지위를 줄 뿐 결과가 당연히 뒤집힌다고 정하지는 않았다.
방해가 고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하도급 공사의 준공필증 제출을 정지조건으로 공사대금채무를 부담하거나 보증한 사람이 시설을 제공하지 않고 공사장 출입을 통제한 사안에서, 그것이 고의에 의한 경우만이 아니라 과실에 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보았다(98다42356 판결요지 [1]).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의제되는 시점은 이러한 신의성실에 반하는 행위가 없었더라면 조건이 성취되었으리라고 추산되는 시점이다(같은 판례 판결요지 [2]).
어떤 조건은 붙여도 효력이 없는가?
조건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것인 때에는 그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민법 제151조 제1항). 조건만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법률행위 전체가 무효가 된다.
이미 결말이 나 있는 사실을 조건으로 붙인 경우는 조건의 종류에 따라 결과가 나뉜다. 조건이 법률행위 당시 이미 성취한 것인 경우, 그 조건이 정지조건이면 조건 없는 법률행위로 하고 해제조건이면 그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같은 조 제2항). 조건이 법률행위 당시에 이미 성취할 수 없는 것인 경우, 그 조건이 해제조건이면 조건 없는 법률행위로 하고 정지조건이면 그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같은 조 제3항).
조건을 붙일 수 없는 법률행위도 있는가?
민법 총칙에는 조건을 붙일 수 없는 법률행위를 일반적으로 정한 규정이 없다. 여기서는 개별 조문이 효력을 명시한 예를 확인한다.
상계가 명문의 금지 예다. 상계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하고, 이 의사표시에는 조건 또는 기한을 붙이지 못한다(민법 제493조 제1항). 계약의 승낙에도 제한이 있다. 승낙자가 청약에 대하여 조건을 붙이거나 변경을 가하여 승낙한 때에는 그 청약의 거절과 동시에 새로 청약한 것으로 본다(민법 제534조).
반대로 조건을 붙일 수 있음을 전제한 조문도 있다. 유언에 정지조건이 있는 경우에 그 조건이 유언자의 사망 후에 성취한 때에는 그 조건 성취한 때로부터 유언의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1073조 제2항). 정지조건 있는 유증은 수증자가 그 조건 성취 전에 사망한 때에는 그 효력이 생기지 아니한다(민법 제1089조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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