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거절이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민법에는 이 이름을 붙인 조문이 없다. 이행지체로 인한 해제를 정한 민법 제544조가 단서에서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 최고를 생략할 수 있게 정할 뿐이다.
쉽게 말하면 — 상대방이 “그 계약은 이행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이때는 기간을 정해 이행하라고 통보하는 절차(최고)를 건너뛰고 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에게 버틸 근거가 있어서 거절하는 것이라면 다릅니다. 그런 거절은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어서 해제나 손해배상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민법은 이행거절에 어떤 효과를 붙이나?
조문이 직접 붙이는 효과는 최고의 면제다. 판례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쌍무계약에서 당사자 일방이 미리 자기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명한 때에는 상대방은 이행의 최고뿐 아니라 자기 채무의 이행 제공도 없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그런 의사 표명이 있었는지는 계약 이행에 관한 당사자의 행동과 계약 전후의 구체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2007다4196 판시사항 [1]). 사안에서는 확정적·종국적으로 명백한 거절 표시가 아니라고 보아 해제를 부정했으므로, 거절 의사는 그 정도로 명백해야 한다.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민법 제544조 본문). 그러나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요하지 아니한다(같은 조 단서). 단서가 덜어 주는 것은 최고 절차다. 해제권 발생의 나머지 요건까지 단서가 함께 면제한다고 조문에 적혀 있지는 않다.
최고 없이 해제하는 자리를 민법은 나누어 두었다. 이행거절은 민법 제544조 단서이고, 정기행위는 전조의 최고를 하지 아니하고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한 민법 제545조다. 채무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이 불능하게 된 때에는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으며(민법 제546조), 이 조문은 최고를 요건으로 두지 않는다. 근거 조문이 다르므로 어느 쪽으로 해제하는지를 먼저 정한다(이행지체·이행불능).
손해배상의 근거 조문은 따로 있다.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90조 본문).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민법 제551조).
거절할 권능이 있는 거절과는 무엇이 다른가?
민법이 이행의 거절을 권리로 인정하는 자리가 따로 있다.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민법 제536조 제1항 본문). 주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취소권 또는 해제권이나 해지권이 있는 동안은 보증인은 채권자에 대하여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민법 제435조, 보증인).
권능에 따른 거절에는 지체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대가적 채무 간에 이행거절의 권능을 가지는 경우에는 이행거절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이행거절 권능의 존재 자체로 이행지체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98다13754 판결요지 [3]). 이 판시는 선이행의무자가 민법 제536조 제2항과 신의칙에 따라 거절권을 가지게 된 사안에 관한 것이다. 항변권의 요건과 그 범위는 동시이행에서 다룬다.
같은 “이행을 거절한다”는 말이라도 둘은 성질이 다릅니다. 받을 것을 아직 못 받아 버티는 것은 법이 인정한 권리이고, 이유 없이 안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약속을 어긴 쪽입니다. 상대방의 거절을 받았다면 그 거절에 근거가 있는지부터 봅니다.
이행하지 않는 것과 이행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것은 어떻게 나뉘나?
조문이 요구하는 것은 의사의 표시다. 민법 제544조 본문은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를 최고를 거친 해제의 요건으로 삼는다. 단서는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를 최고 면제의 요건으로 삼는다. 이행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단서의 요건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판례는 이행거절 의사에 ‘명백히 표시’를 요구한 예를 남기고 있다.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있는 거래계약은 당사자 쌍방이 허가신청 협력의무의 이행거절 의사를 명백히 표시할 때 무효로 확정될 수 있다(98다40459 이유 중 법리, 유동적 무효). 이 법리는 쌍방의 표시를 들고 있어, 한쪽의 거절만으로 곧바로 확정되는 형태가 아니다.
거꾸로 협력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정 자체는 해제 사유가 되지 않는다.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있는 거래계약의 당사자는 상대방이 그 거래계약의 효력이 완성되도록 협력할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음을 들어 일방적으로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있는 거래계약 자체를 해제할 수 없다(98다40459 판결요지 [3]).
전보배상과 해제는 어느 시점에 정해지나?
민법이 정한 전보배상 조문은 지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채무자가 채무의 이행을 지체한 경우에 채권자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여도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지체후의 이행이 채권자에게 이익이 없는 때에는 채권자는 수령을 거절하고 이행에 갈음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95조). 이행기가 아직 오지 않은 단계의 거절은 이 문언에 바로 들어맞지 않는다.
해제로 나아간 뒤에는 되돌릴 수 없다. 해제의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한다(민법 제543조 제2항). 해제하더라도 손해배상 청구는 그대로 남으므로(민법 제551조), 원상회복과 손해배상을 함께 행사할 수 있다(해제).
실무 체크포인트
- 최고를 생략하기 전에 상대방 거절의 근거를 확인한다. 동시이행의 항변권(민법 제536조 제1항)이나 보증인의 이행거절권(민법 제435조)에 따른 거절은 민법 제544조 단서가 말하는 거절과 성질이 다르다.
- 거절 의사는 뒤에 증명할 수 있는 형태로 확보한다. 단서의 요건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이고, 이행이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민법 제544조).
- 해제 통지를 보내기 전에 판단을 끝낸다. 해제의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한다(민법 제543조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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