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판력의 시적 범위란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어느 시점의 권리관계를 확정하는가, 즉 기판력의 시간적 한계다. 기준시(표준시)는 원칙적으로 사실심 변론종결 시다. 민사소송법에 직접 규정은 없으나, 변론종결 뒤에 생긴 사유라야 청구이의로 다툴 수 있다는 점(민사집행법 제44조 제2항)이 이 기준시를 전제한다.
쉽게 말하면 — 판결은 “재판의 변론이 끝난 그 시점”의 권리관계를 확정합니다. 그 전에 낼 수 있었던 주장은 나중에 못 꺼내고, 변론이 끝난 뒤에 새로 생긴 사정만 다시 다툴 수 있습니다.
기준시(변론종결 시)
기판력의 기준시는 사실심 변론종결 시다. 법원은 변론종결 시까지 제출된 자료로 판단하므로, 그 시점의 권리관계가 확정된다. 항소심까지 갔으면 항소심 변론종결 시가 기준이다.
예외로 변론 없이 하는 판결(무변론판결)은 판결선고 시가 기준이다(민사소송법 제218조 제1항이 “변론 없이 한 판결의 경우에는 판결을 선고한 뒤의 승계인”이라 해 선고 시를 기준시로 전제한다). 변론이 열리지 않아 선고 시가 자료 제출의 종점이 되기 때문이다.
화해권고결정은 확정되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지만, 기판력의 기준시는 변론종결 시가 아니라 그 결정의 확정 시다(2010다2558). 화해권고결정은 이의신청이 있으면 소송이 결정 이전 상태로 돌아가므로(민사소송법 제231조·민사소송법 제232조), 일반 판결과 기준시가 다르다.
차단효(실권효·기준시 전 사유)
기준시 전에 주장할 수 있었던 공격방어방법은 기판력에 의해 차단된다. 당사자가 변론종결 전에 주장했거나 주장할 수 있었던 사유는, 확정 후에 다시 내세울 수 없다. 이를 차단효 또는 실권효라 한다.
차단효는 알면서 주장하지 않았는지, 모른 데 과실이 있었는지를 묻지 않는다. 변론종결 시 이미 있던 변제·면제·시효소멸 같은 채무소멸 사유를 기준시 후에 내세워 이행의무를 면할 수 없다.
“그때 그 주장을 했어야 했는데 안 했다”는 사정은 통하지 않습니다. 재판 중에 낼 수 있던 카드를 안 냈으면, 판결이 끝난 뒤에는 그 카드를 쓸 수 없습니다.
기준시 후 사유(청구이의)
기준시 후에 새로 생긴 사유는 차단효를 받지 않는다. 변론종결 뒤에 변제 등 채무소멸 사유가 생기면 청구이의의 소로 집행력을 배제할 수 있다(민사집행법 제44조 제2항).
이 기준시 구분은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에서도 작동한다. 전소 승소확정판결과 같은 청구의 재소는 원칙적으로 소의 이익이 없지만, 확정판결 채권의 10년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하면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가 허용된다(2018다24349). 이 후소에서도 전소 판결 내용에 저촉되는 심리는 할 수 없으나, 전소 변론종결 뒤에 생긴 변제·상계·면제·소멸시효 완성 같은 사유는 피고가 항변으로 내세워 후소의 심리대상이 된다(같은 판결).
다만 “새로운 사유”는 새 사실관계를 말한다. 기존 사실에 대한 새 증거, 새로운 법적 평가, 단순한 법률·판례의 변경만으로는 기준시 후 사유가 되지 않아 차단효를 피하지 못한다. 위헌결정의 효력은 계속 중인 사건이나 위헌결정 후 제소된 사건 등에서 별도로 문제 되므로, 이를 단순히 “새 사유가 아니다”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차단효의 한계(형성권·상계·한정승인)
형성권은 기준시 전에 가지고 있었으면 행사하지 않았어도 차단된다는 것이 통설·판례다. 반면 상계권은 의사표시를 기준시 후에 한 때에는, 그 전에 상계적상이었더라도 변론종결 후 사유로 보아 차단되지 않는다. 상계는 의사표시 시에 효과가 생기고 행사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정승인은 책임의 범위 문제라 기판력이 생기지 않는 사항으로 보아, 변론종결 전에 주장하지 않아 유보 없는 판결이 확정돼도 이후 청구이의로 주장할 수 있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6다23138 판결).
이 예외가 인정되는 이유가 곧 그 한계를 정한다. 한정승인에 의한 책임 제한은 상속채무의 존재와 범위를 정하는 것과 무관하게 판결의 집행 대상을 상속재산 한도로 한정해 집행력만 제한한다. 그래서 채무자가 한정승인 사실을 주장하지 않으면 책임의 범위가 현실적인 심판대상으로 등장하지 않아 주문에서도 이유에서도 판단되지 않고, 그 부분에는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2008다79876). 반면 상속포기는 상속에 의한 채무의 존재 자체가 문제되어 확정판결의 주문에 당연히 기판력이 미치므로, 이 실권효 제한의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같은 판결). 변론종결 전에 주장하지 않으면 차단된다.
다만 전소에서 한정승인이 실제로 심리되어 주문에 ‘상속재산 한도’의 책임유보가 명시된 경우에는, 그 책임범위 판단에 기판력 또는 이에 준하는 효력이 생긴다. 그러면 채권자는 후소에서 변론종결 전의 법정단순승인 사유 등을 들어 유보 없는 판결을 다시 구할 수 없다(2012다3197).
재판 전부터 가진 취소권·해제권 같은 권리는 판결 뒤에 행사하려 해도 막힙니다. 다만 상계는 판결 뒤에 의사표시를 했다면 차단되지 않습니다. 또 한정승인은 재판 때 말하지 않았어도 나중에 청구이의로 살릴 수 있지만, 상속포기는 그렇지 못해 미리 주장하지 않으면 막힙니다. 단, 앞 재판에서 한정승인이 이미 인정돼 판결 주문에 “상속재산 한도로만 갚는다”고 적혔다면 그 부분은 다시 뒤집을 수 없습니다.
기판력 없는 집행권원과의 차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 집행권원이라도, 기판력이 있는지에 따라 시적 차단효가 다르다. 지급명령은 확정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지만(민사소송법 제474조) 기판력은 없다(2006다73966). 청구이의 사유를 변론종결 후로 한정하는 민사집행법 제44조 제2항이 지급명령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민사집행법 제58조 제3항), 발령 전에 생긴 청구권의 불성립·무효도 청구이의로 주장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확정판결의 시적 범위와 다르다. 이행권고결정도 같다.
같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라도 지급명령은 기판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급명령은 “원래 그 빚이 없었다”는, 발령 전에 있던 사유도 나중에 청구이의로 다툴 수 있습니다. 확정판결이라면 막혔을 주장이 지급명령에서는 열려 있는 것입니다.
실무 체크포인트
- 확정판결 후 다투려면 사유 발생 시점이 변론종결 전인지 후인지부터 확인한다. 전 사유면 차단되어 청구이의의 소가 안 된다(민사집행법 제44조 제2항).
- 새 증거를 찾았거나 다른 판결이 사실을 달리 봤다는 사정만으로는 차단효를 못 피한다. 본인소송 안내 시 이 점을 분명히 고지한다.
- 한정승인은 변론종결 전에 주장 못 했어도 청구이의로 살릴 수 있으나(2006다23138), 상속포기는 그렇지 않다(2008다79876). 둘을 구분해 본다. 다만 전소 주문에 한정승인 책임유보가 명시됐으면 후소에서 뒤집을 수 없다(2012다3197).
- 지급명령·이행권고결정은 기판력이 없어, 발령 전에 생긴 사유도 청구이의로 다툴 수 있다(2006다73966). 확정판결과 달리 본다.
관련
- 개념·해설
- 법령
- 판례·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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