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정연대채무란 수인의 채무자가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가진 채무를 각자 전부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되, 법령이나 계약에 의한 연대가 아니라 발생 원인이 다른 별개의 채무가 우연히 중첩됨으로써 성립하는 채무관계이다.
쉽게 말하면 — A와 B가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피해자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해야 할 때, 피해자는 A에게도 B에게도 1,000만 원을 청구할 수 있고, 어느 쪽이 먼저 갚든 나머지 채무자의 의무도 소멸합니다. 다만 A에게 시효가 완성해도 B의 의무는 그대로 남습니다.
연대채무와 어떻게 다른가
연대채무(민법 제413조)는 법령이나 당사자 합의에 의해 성립하며, 이행청구·소멸시효 완성·면제 등 일정 사유가 다른 채무자에게도 절대적 효력을 미친다(민법 제416조, 제421조, 제419조).
부진정연대채무는 이와 달리 발생 원인이 서로 다른 독립적 채무가 같은 급부 목적을 우연히 공유하는 관계이다. 따라서 민법 제413조 이하의 연대채무 규정이 직접 적용되지 않고, 이행청구·면제·소멸시효 중단 등은 원칙적으로 다른 채무자에게 효력이 없다.
일반 연대채무는 “우리 셋이 합의해서 연대로 빌렸다”처럼 처음부터 연대가 설계된 것입니다. 부진정연대채무는 서로 상관없던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손해에 책임을 지게 된 경우입니다. 그래서 한 쪽에 생긴 일이 다른 쪽에 영향을 덜 줍니다.
어떤 경우에 성립하는가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공동불법행위자의 손해배상 책임이다. 민법 제760조는 공동불법행위자가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부진정연대채무로 본다.
그 밖에 판례가 부진정연대관계를 인정하는 주요 유형은 다음과 같다.
- 사용자 책임(민법 제756조)과 피용자 직접 불법행위 책임의 중첩
- 상법 제24조에 의한 명의대여자 책임과 명의차용인 책임의 중첩(2010다91886)
- 보증인이 아닌 물상보증인 등 각자 별도 원인으로 동일 채무를 담보하는 경우
예를 들어 회사 직원이 업무 중 사고를 낸 경우, 피해자는 직원에게도 회사에게도 전액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직원의 개인 책임과 회사의 사용자 책임이 각각 별개로 성립하지만, 목적이 같아서 부진정연대 관계가 됩니다.
효과: 절대적 효력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변제·상계 등 채권을 실질적으로 만족시키는 사유는 절대적 효력을 가진다. 채무자 1인이 변제하면 다른 채무자의 채무도 그 범위에서 소멸한다.
이행청구·면제·소멸시효 중단·시효이익 포기는 상대적 효력만 있다. 채무자 1인에 대한 이행청구나 시효 중단이 다른 채무자에게 미치지 않는다(2010다91886 판결요지: “채무자 1인에 대한 이행청구 또는 채무자 1인이 행한 채무의 승인 등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나 시효이익의 포기가 다른 채무자에게 효력을 미치지 아니한다”).
채무면제 역시 상대적 효력이다.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하여 권리를 포기하거나 채무를 면제하더라도 다른 채무자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96다50896).
예를 들어 피해자가 A에 대한 청구를 포기해도 B에게는 전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A가 빚을 다 갚으면 B도 그만큼 의무를 면합니다.
다액채무자 일부변제 시 소멸 순서
부진정연대 관계에 있는 채무자들의 채무액이 서로 다를 때(예: 과실상계로 사용자는 800만 원, 피용자는 1,000만 원), 다액채무자가 일부변제를 하면 다액채무자가 단독으로 부담하는 부분부터 먼저 소멸한다.
대법원 2018. 3. 22. 선고 2012다74236 전원합의체 판결(2012다74236)은 “당사자의 의사와 채무 전액의 지급을 확실히 확보하려는 부진정연대채무 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다액채무자가 단독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부분”이 먼저 소멸한다고 판시해 종전 판례를 변경했다.
빚 액수가 서로 다를 때(예: 회사 800만 원, 직원 1,000만 원), 더 많이 지는 쪽이 일부를 갚으면 그 사람만 단독으로 부담하던 부분부터 먼저 없어집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전 입장을 바꾼 부분이라 남은 청구액 계산에 주의해야 합니다.
내부 구상관계
채무자 1인이 자기 부담 부분 이상을 변제해 공동 면책을 시킨 경우, 다른 채무자에게 그 부담 부분 비율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동불법행위자의 경우 내부 부담 부분은 과실 비율에 따라 정해진다(96다50896).
구상권 발생 시점은 현실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때이다. 구상권 행사 규정으로 민법 제425조(출재채무자의 구상권)가 준용된다.
실무 체크포인트
- 피해자는 공동불법행위자 모두를 공동피고로 삼을 수도 있고, 그 중 일부만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일방이 무자력이더라도 다른 채무자에게 전액 청구가 가능하다.
- 소멸시효는 각 채무자별로 독립해 진행한다. A에 대해 시효를 중단시켰다고 B의 시효가 중단되지 않는다. 채권자는 각 채무자를 상대로 별도로 중단 조치를 취해야 한다.
- 공동불법행위자 1인으로부터 일부 변제를 받은 경우, 다액채무자 단독 부담 부분이 먼저 소멸하므로 소액채무자에 대한 나머지 청구 범위 계산이 달라진다.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 실무 관행과 다르므로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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