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액의 예정이란 채무불이행이 있을 때 채무자가 지급할 손해배상액을 당사자가 미리 정해 두는 약정이다(민법 제398조 제1항). 위약금의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같은 조 제4항). 당사자가 금전이 아닌 것으로 손해의 배상에 충당할 것을 예정한 경우에도 같은 조 제1항부터 제4항까지가 준용된다(같은 조 제5항).
쉽게 말하면 — 계약을 어기면 얼마를 물어주기로 미리 적어 두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정해 두면 실제로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따지지 않고 그 금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그냥 “위약금”이라고만 적혀 있어도 일단 이 약속으로 봅니다. 대신 금액이 지나치게 크면 법원이 깎을 수 있습니다.
예정해 두면 실제 손해와 무엇이 달라지는가?
예정을 해 두면 실제 손해가 예정액보다 크더라도 원칙적으로 그 초과분을 따로 청구하지 못한다. 초과분까지 받으려면 그런 취지의 특약이 있어야 한다. 예정액을 물리는 대신 실손해 전액을 묻지 못한다는 점이 위약벌과 갈리는 지점이다.
예정액 청구는 실제 손해액 청구와 별개의 청구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예정액의 청구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의 청구는 그 청구원인을 달리하는 별개의 청구이므로, 예정액 청구 가운데 손해배상액의 청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99다49644). 일반적인 실제 손해로 청구하려면 손해의 발생 사실과 그 손해를 금전적으로 평가한 배상액을 채권자가 주장·증명해야 한다. 다만 금전채무 불이행의 지연이자는 채권자가 그 손해를 주장해야 하지만 따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민법 제397조 제2항, 같은 판례 판결요지 [2]).
예정은 계약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약정이 맡은 기능으로 판단한다. 공사 도급계약에서 수급인이 준공이라는 일의 완성을 지체한 데 대한 지체상금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97다23150).
예정액이 지나치면 깎을 수 있는가?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민법 제398조 제2항). 여기서 부당히 과다한 경우란 모든 사정을 참작할 때 일반사회관념에 비추어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를 가리킨다(86다카2070). 참작할 사정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각 지위, 계약의 목적 및 내용,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동기, 채무액에 대한 예정액의 비율, 예상손해액의 크기, 그 당시의 거래관행 등이다(같은 판례). 부당히 과다한지를 판단할 때 실제의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는 없다(같은 판례).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른 감액은 법원이 당사자의 주장이 없어도 직권으로 할 수 있다(2018다248855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다만 예정액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감액되는 것은 아니고, 부당히 과다한지와 감액 정도는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한다.
예정을 해 두면 이행청구나 해제는 어떻게 되는가?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이행의 청구나 계약의 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민법 제398조 제3항).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도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민법 제551조). 두 조문을 함께 보면, 예정을 해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본래 급부의 이행을 구하지 못하게 되거나 해제권이 없어지지 않는다.
위약금이 위약벌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위약금 약정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는 의사해석의 문제다. 계약서 등 처분문서의 내용과 계약의 체결 경위, 당사자가 위약금을 약정한 주된 목적 등을 종합해 구체적인 사건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한다(2018다248855 전원합의체). 위약금은 제398조 제4항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된다. 다만 하나의 계약에 손해배상예정 조항이 따로 있거나 실손해의 배상을 전제로 하는 조항이 있고 그와 별도로 위약금 조항을 두어, 그 위약금 조항을 예정으로 해석하면 이중배상이 이루어지는 등의 사정이 있을 때에는 위약벌로 보아야 한다(같은 판례).
위약벌로 판단되면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해 그 액을 감액할 수 없다(같은 판례 다수의견). 다수의견은 민법이 위약금 약정 중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대해서만 법관의 재량에 의한 감액을 인정한 것을 입법자의 결단으로 보았다. 이 판결에는 위약벌도 제398조 제2항을 유추해 감액할 수 있다는 대법관 6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다만 위약벌이 의무의 강제로 얻는 채권자의 이익에 비해 과도하게 무거우면 그 전부 또는 일부가 공서양속에 반하여 무효가 될 수 있다(2018다248855 전원합의체 다수의견). 이는 제398조 제2항에 따른 감액과는 다른 효력 통제이고, 법원은 사적 자치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 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계약서에 위약금 조항 하나만 있다면 우선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합니다. 다만 계약 전체의 내용과 체결 경위, 위약금의 주된 목적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같은 계약서에 “손해는 따로 배상한다”는 조항과 별도의 위약금 조항이 있어 예정으로 해석하면 이중배상이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위약벌로 봅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부당히 과다하면 감액할 수 있지만, 위약벌은 제398조 제2항으로 감액할 수 없고 과도하게 무거운 경우 공서양속 위반에 따른 전부 또는 일부 무효가 문제 됩니다.
계약금에 붙은 위약금은 어떤 성질인가?
계약금이 수수되었어도 이를 위약금으로 하기로 하는 특약이 없는 이상 계약금은 해약금의 성질을 가질 뿐이다(2013다14569 이유). 이때는 상대방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해제되어도 계약불이행으로 입은 실제 손해만 배상받고, 계약금이 당연히 상대방에게 귀속되지는 않는다(같은 판례 이유).
반대로 매수인이 위약하면 계약금이 매도인에게 귀속되고 매도인이 위약하면 그 배액을 상환한다는 약정이 있는 경우, 그 계약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398조 제1항의 손해배상액 예정의 성질과 민법 제565조의 해약금 성질을 함께 가진다(91다2151). 두 성질을 겸한 계약금에 관하여 매수인이 해약금에 기한 해제를 주장했더라도, 그 주장에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몰취된 계약금 중 예정액으로서 과다한 부분의 반환을 구하는 취지가 포함된 경우에는 그 부분을 감액해 부당이득으로 반환받을 수 있다(95다33726).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배액을 상환하고 해제하는 문제는 해약금에서 다룬다.
계약금만 주고받았다면 위약금 약속이 따로 없는 한 그 돈이 곧바로 상대방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매수인이 어기면 계약금은 몰수, 매도인이 어기면 배액 반환”이라고 적어 두었다면 그 계약금은 손해배상 예정이면서 해약금이기도 합니다. 몰수당한 계약금이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되면 과다한 부분을 돌려 달라고 다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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