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개는 채무의 중요한 부분을 바꿔 구채무를 없애고 새 채무를 만드는 계약이다. 당사자가 채무의 중요한 부분을 변경하는 계약을 한 때에는 구채무는 경개로 인하여 소멸한다(민법 제500조). 판례는 이를 기존채무의 중요부분을 변경하여 기존채무를 소멸시키고 이와 동일성이 없는 새로운 채무를 성립시키는 계약이라고 설명한다(2012다46170 전원합의체 판결요지 [3]).
쉽게 말하면 — 원래 있던 빚을 없애고 그 자리에 내용이 다른 새 빚을 만드는 계약입니다. 갚는 날짜나 갚는 방법만 바꾼 것과 겉모습은 비슷해도 효과는 크게 다릅니다. 옛 빚이 사라지면 그 빚을 전제로 한 담보도 당사자가 옮기기로 약정하지 않는 한 새 빚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인지는 옛 빚을 없애려는 뜻으로 새 약정을 했는지에 달려 있고, 그 뜻이 분명하지 않으면 법원이 약정의 동기와 목적을 종합해 해석합니다.
경개인지 변제기·변제방법의 변경인지 어떻게 구별하는가?
구별 기준은 당사자의 의사다. 기존채무와 관련하여 새로운 약정을 체결한 경우 그 약정이 경개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기존채무의 변제기나 변제방법 등을 변경한 것인지는 당사자의 의사에 의하여 결정되고, 당사자의 의사가 명백하지 않을 때에는 의사해석의 문제로 귀착된다(2012다46170 판결요지 [3], 2010다86655 판시사항 [1]). 그 의사를 해석할 때에는 새로운 약정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그 약정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다(같은 판결요지). 그렇게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같은 판결요지).
인접 제도와의 경계도 채무의 동일성에서 나온다. 동일성을 유지한 채 채무자만 바꾸는 것은 채무인수이고, 인수인은 전채무자가 항변할 수 있는 사유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민법 제458조). 동일성을 유지한 채 채권자를 바꾸는 것은 채권양도다. 경개는 구채무와 동일성이 없는 신채무를 성립시키는 점에서 이들과 구별된다. 본래 급여 대신 다른 급여를 실제로 하여 채무를 소멸시키는 대물변제와도 다르다. 특히 기존 채권이 제3자에게 이전된 약정에서 당사자의 의사가 명백하지 않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가 담보·항변권 상실의 불이익을 택했다고 보지 않아 일반적으로 채권양도로 본다(96다16612).
준소비대차와는 어떻게 나뉘는가?
가장 다투어지는 경계가 준소비대차다. 당사자 쌍방이 소비대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금전 기타의 대체물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가 그 목적물을 소비대차의 목적으로 할 것을 약정하면 소비대차의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605조).
둘은 모두 기존채무를 소멸하게 하고 신채무를 성립시키는 계약이라는 점에서 같다. 차이는 동일성이다. 경개는 기존채무와 신채무 사이에 동일성이 없는 반면, 준소비대차는 원칙적으로 동일성이 인정된다(2014다64752 판결요지 [1]).
어느 쪽인지는 일차적으로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고, 의사가 명백하지 않으면 의사해석의 문제가 된다. 이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일성을 상실함으로써 채권자가 담보를 잃고 채무자가 항변권을 잃게 되는 것과 같이 스스로 불이익을 초래하는 의사를 표시했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일반적으로 준소비대차로 보아야 한다(같은 판결요지). 다만 준소비대차로 본다고 해서 구채무와 담보가 당연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준소비대차는 구채무가 소비대차인 경우에도 성립할 수 있고, 구채무의 소멸 여부는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정해진다(94다8440 판결요지).
이 구별은 보증에 직결된다. 기존 수출어음대출금의 변제기한을 연장하려고 한 신규 일반자금대출이 갱개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데도, 준소비대차라고 단정해 종전 채무의 연대보증 효력이 신규 대출금 채무에 미친다고 본 원심을 파기한 사례가 있다(2004다37669 판시사항 [2]). 대환으로 채무를 정리할 때 종전 보증이 그대로 따라오는지가 여기서 나뉜다.
채무자나 채권자를 바꾸는 경개는 어떻게 하는가?
채무자의 변경으로 인한 경개는 채권자와 신채무자간의 계약으로 이를 할 수 있다(민법 제501조 본문). 그러나 구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를 하지 못한다(같은 조 단서). 세 당사자가 함께 하는 계약도 물론 가능하고, 조문은 채권자와 신채무자만으로도 할 수 있다는 최소 요건을 정한 것이다. 다만 그 의사에 반하는 경개는 단서가 막는다.
채권자의 변경으로 인한 경개는 확정일자있는 증서로 하지 아니하면 이로써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민법 제502조). 조문은 확정일자를 갖추지 못한 효과를 제삼자에 대한 대항 불능으로 정했다. 또 민법 제503조는 제451조제1항의 규정을 채권자의 변경으로 인한 경개에 준용한다. 준용되는 민법 제451조 제1항 본문은 채무자가 이의를 보류하지 아니하고 승낙한 때에는 양도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로써 양수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한다. 채권자변경 경개에서는 구채권자와 신채권자가 각 그 자리에 놓인다. 같은 항 단서에 따라 채무자가 채무를 소멸하게 하기 위하여 급여한 것이 있으면 이를 회수할 수 있고, 부담한 채무가 있으면 그 성립되지 아니함을 주장할 수 있다. 그 회수와 주장의 상대방은 양도인, 곧 채권자변경 경개에서는 구채권자다. 대법원은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의 이전을 다룬 사건에서, 그것을 채권자변경 경개로 보더라도 확정일자 있는 증서가 없으면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했다(96다16612 이유). 다만 이 대목은 “가사 …경개로 본다고 하더라도”라는 가정적 판단이고, 대법원 스스로 그 판단이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같은 판결).
구채무가 소멸하면 담보와 신채무는 어떻게 되는가?
구채무는 경개로 인하여 소멸한다(민법 제500조). 다만 경개로 인한 신채무가 원인의 불법 또는 당사자가 알지 못한 사유로 인하여 성립되지 아니하거나 취소된 때에는 구채무는 소멸되지 아니한다(민법 제504조). 신채무가 서지 않았는데 구채무까지 없어지는 결과를 조문이 이 두 사유에 한하여 막아 둔 것이다.
담보는 자동으로 옮겨 가지 않는다. 경개의 당사자는 구채무의 담보를 그 목적의 한도에서 신채무의 담보로 할 수 있다(민법 제505조 본문). 조문이 당사자의 행위를 “할 수 있다”로 정했으므로 그런 약정이 없으면 담보를 신채무에 쓸 근거가 없다. 옮기는 경우에도 그 목적의 한도라는 상한이 있다. 그러나 제삼자가 제공한 담보는 그 승낙을 얻어야 한다(같은 조 단서). 문언이 “제삼자가 제공한 담보”이므로 물상보증만이 아니라 보증도 여기에 든다. 제3자 담보 제공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구조는 채무인수에서 전채무자의 채무에 대한 보증이나 제3자가 제공한 담보가 원칙적으로 소멸하는 것과 같은 방향이다(민법 제459조).
연대채무에는 특칙이 있다. 어느 연대채무자와 채권자간에 채무의 경개가 있는 때에는 채권은 모든 연대채무자의 이익을 위하여 소멸한다(민법 제417조). 상세는 연대채무에서 다룬다.
경개계약 자체를 되돌릴 수 있는가?
경개계약은 신채권을 성립시키고 구채권을 소멸시키는 처분행위다. 신채권이 성립하면 그 효과는 완결되고 경개계약 자체의 이행 문제는 생길 여지가 없으므로, 경개로 성립된 신채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경개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2002다62333 판결요지 [1]).
다만 계약자유의 원칙상 경개계약이 성립한 뒤 그 계약을 합의해제해 구채권을 부활시키는 것은 적어도 당사자 사이에서는 가능하다(같은 판결요지 [2]). 민법 제504조가 구채무 부활을 두 사유로 한정하고 있는 것과 별개의 경로다.
당사자가 여럿인 경개계약을 일부 당사자 사이에서만 합의해제하는 경우의 법률관계를 다룬 사례도 있다(2010다699 판시사항).
실무 체크포인트
- 기존 채무를 정리하며 새 약정서를 쓸 때, 구채무를 소멸시키려는 것인지 변제기·변제방법만 바꾸는 것인지를 문면에 분명히 적는다. 의사가 명백하지 않으면 의사해석으로 넘어간다(2012다46170 판결요지 [3]).
- 구채무에 저당권·보증 등 담보가 있으면, 경개 약정에 담보를 신채무의 담보로 한다는 조항을 함께 두어야 한다(민법 제505조 본문).
- 그 담보가 제3자 제공 담보이면 담보 제공자의 승낙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민법 제505조 단서).
- 채권자를 바꾸는 경개는 확정일자 있는 증서로 해 두어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민법 제50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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