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해지조항

도산해지조항이란 계약 당사자 한쪽에 회생·파산 등 도산절차가 개시되거나 그 신청이 있으면 상대방이 계약을 해지·해제할 수 있다고 미리 정해 둔 조항이다. 도산을 자동 해지 사유로 삼는 조항(Ipso Facto Clause)으로, 그 효력이 다투어진다.

쉽게 말하면 — “당신이 회생·파산에 들어가면 이 계약은 바로 끊겠다”고 계약서에 적어 둔 조항입니다. 막상 도산하면 상대가 계약을 끊어 버려 회생에 필요한 계약까지 잃을 수 있어서, 이런 조항이 유효한지가 문제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도산해지조항이 유효하면 회생을 시작한 채무자가 사업에 꼭 필요한 계약을 잃는다. 채무자회생법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서 관리인·파산관재인에게 이행·해지의 선택권을 준다(채무자회생법 제119조, 같은 법 제335조). 도산해지조항을 그대로 인정하면 이 선택권이 무력화되고 회생의 기초가 흔들린다.

회생은 사업을 살리려는 절차인데, 도산했다고 계약이 다 끊기면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이 관리인에게 준 “계약을 이어갈지 끊을지” 선택권과 충돌합니다.

판례는 일률적 무효라고 보지 않는다

채무자회생법은 도산해지조항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계약의 성질·내용·이행 정도와 해지사유로 정한 사건 등을 보지 않은 채 도산해지조항을 어느 경우에나 무효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배되는 등 별도의 무효 사유가 없다면, 정리절차개시 뒤 회사에 영향을 준다는 사정만으로 무효라고 할 수 없다는 취지다(2005다38263).

그 사건의 합작투자계약은 본질적으로 조합계약이었다. 당사자들은 출자로 조합 구성 채무를 마쳤고, 남은 협조의무는 서로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지 않아 구 회사정리법상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하지 않았다. 고도의 신뢰관계에 기초한 계약이어서 관리인이 상대방이 되는 상황에 대비할 정당한 이익도 있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에서 해당 조항을 무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조항의 유효를 주문으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

이 판결은 정리절차개시 당시 매매계약을 체결할 권리가 있었고 개시 뒤 권리행사로 매매계약이 성립하거나 장차 성립할 수 있는 경우에도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법리를 유추적용한다고 했다. 그래서 원고가 신고한 정지조건부 주식인도청구권은 정리채권이 될 수 없었고, 이것이 상고기각의 직접적인 이유였다(2005다38263 판결요지 [3]).

대법원은 “이런 조항은 무조건 무효”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도산해지조항이 당연히 유효하다고 선언한 것도 아닙니다. 계약의 성질과 이행 상태, 부인권이나 공서양속 위반 같은 별도 사유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쌍방미이행 쌍무계약과의 충돌

양쪽이 모두 이행을 마치지 않은 쌍무계약이면 관리인은 계약을 해제·해지하거나 채무를 이행하고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 파산에서도 파산관재인에게 같은 선택권이 있다(같은 법 제335조 제1항).

2005다38263 판결의 이유는 이러한 선택권의 취지에 따른 해석 가능성을 언급했다. 도산해지조항을 무효로 보거나, 정리절차개시 뒤 종료 때까지 적용 또는 해지권 행사를 제한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사건에 적용된 결론이 아니다. 해당 합작투자계약에는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므로, 다른 계약에서는 쌍방의 미이행 채무가 대가관계에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특히 양쪽 모두 아직 의무를 다 안 한 계약에서는 관리인이나 파산관재인의 선택권과 조항이 충돌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제한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모든 계약에서 곧바로 무효가 된다고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지급결제와 적격금융거래에는 특칙이 있다

지정된 지급결제제도와 법정 청산결제제도의 결제·정산 등은 운영자가 정한 바에 따라 효력이 발생하고 해제·해지·취소·부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채무자회생법 제120조 제1항·제2항). 기본계약에 따른 적격금융거래의 종료와 정산도 당사자가 정한 바에 따라 효력이 발생하며 같은 제한을 받는다. 다만 채무자가 상대방과 공모해 회생채권자 또는 회생담보권자를 해할 목적으로 거래한 경우에는 이 보호가 적용되지 않는다(같은 조 제3항). 파산에서는 같은 법 제336조가 이 특칙을 준용한다.

이는 일반 계약의 도산해지조항이 당연히 유효하다는 뜻이 아니다. 법이 정한 지급결제·청산결제와 적격금융거래의 종료·정산에 한정된 별도 보호다.

실무 체크포인트

  •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은 계약 유형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일률적으로 유효·무효를 단정하지 말고 쌍방미이행 여부와 관리인 선택권 침해 정도를 함께 본다.
  • 회생채무자에게 필요한 계약(공급·라이선스·리스 등)에 도산해지조항이 있으면, 회생절차 진행 중 적용 제한을 주장할 여지를 검토한다.
  • 계약 설계 단계에서는 도산해지조항을 두더라도 관리인 선택권과 충돌하는 부분은 다툼 소지가 있음을 전제한다.
  • 금융계약이면 일반 계약 법리만 적용하지 말고, 거래와 기본계약이 제120조 제3항의 적격금융거래에 해당하는지와 공모·해할 목적 단서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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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 2026년 9월 13일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고 개별 사안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최종 수정일 기준으로 작성됐으며 이후 법령 개정이나 판례 변경으로 현행과 달라질 수 있고, 법령·판례의 문언은 정본이 우선합니다. 내용만을 근거로 한 판단으로 생긴 손해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면책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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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법무사

신우법무사

법무사 김정걸은 1994년 제2회 법무사시험에 합격해 32년간 법무사 업무를 해 왔습니다. 1984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외국인 상속등기 · 한정승인 · 상속포기, 상속관련 소송 · 비송, 회사등기, 강제집행 등을 주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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