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포기·한정승인 전에 상속재산을 처분하거나, 한정승인 시 재산목록에 상속재산을 고의로 누락하면 법정단순승인으로 간주되어 상속포기·한정승인의 효력이 부인된다(민법 제1026조).
쉽게 말하면 —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하기 전에 상속재산을 건드리거나, 한정승인 시 재산목록에 일부러 재산을 빼면 효력이 없어집니다. 결국 빚까지 다 물려받은 것으로 처리됩니다.
같은 “재산에 손댄 행위”라도 셋으로 나뉩니다. 첫째, 효력이 생기기 전에 망인의 돈을 받아 쓴 경우입니다. 이건 처분이라 그 뒤에 한 포기가 효력을 잃습니다. 둘째, 효력이 생긴 뒤에 받은 돈을 다른 상속인 계좌에 넣어 둔 정도입니다. 재산을 없앤 것이 아니라 관리에 그쳐 포기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셋째, 알고 있던 채권을 재산목록에서 일부러 빼놓은 경우입니다. 채권자를 해치려는 의사가 인정되면 단순승인한 것으로 처리됩니다.
어떤 행위가 법정단순승인을 유발하는가
민법 제1026조는 법정단순승인 사유 세 가지를 정한다.
-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를 한 때(1호)
- 숙려기간 내에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하지 않은 때(2호)
-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한 후에 상속재산을 은닉하거나 부정소비하거나 고의로 재산목록에 기입하지 않은 때(3호)
이 사건에서 문제된 것은 1호와 3호다.
상속포기 전 처분행위는 왜 무조건 단순승인이 되는가
민법 제1026조 1호는 한정승인·포기의 효력이 생기기 전에 한 처분에만 적용된다(2003다63586). 그 효력은 신고를 접수한 때가 아니라 수리 심판이 고지된 때 생기므로(2013다73520), 신고서를 냈다는 사정만으로 1호가 꺼지지 않는다. 상속인이 그 전에 피상속인의 채권을 추심하여 변제받는 행위도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다(2009다84936).
이 사건에서 피고 1은 상속포기 신고 전에 망인의 소외 2에 대한 손해배상채권 1,000만 원을 추심하여 수령하였다. 대법원은 이를 상속재산 처분행위로 보아 피고 1이 그 시점에 이미 단순승인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후의 상속포기 신고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상속포기 후 처분행위는 어떻게 다른가
상속포기 후에 한 처분행위는 민법 제1026조 3호에만 해당 여지가 있다. 3호는 ‘은닉’·’부정소비’·’고의 재산목록 미기입’으로 한정한다.
‘은닉’이란 상속재산의 존재를 쉽게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고, ‘부정소비’란 정당한 사유 없이 상속재산을 써서 없앰으로써 그 재산적 가치를 상실시키는 것이다(2009다84936·2003다63586). 이 두 가지는 행위의 태양으로 판정하고, 뒤에서 볼 사해 의사는 ‘고의 재산목록 미기입’에만 요구된다.
포기한 상속인 때문에 차순위 상속인이 상속을 승인한 경우에는 3호 사유가 있어도 승인으로 보지 않는다(민법 제1027조). 이 사건은 같은 순위 공동상속인 사이의 일이라 이 예외가 문제되지 않았다.
이 사건 피고 2는 상속포기 신고·수리가 완료된 이후에 망인의 채무자 소외 3으로부터 부동산 매매대금 1,000만 원을 수령하여 공동상속인인 피고 3의 계좌에 입금하였다. 법원은 이를 상속재산의 관리에 지나지 않고, 재산 가치를 상실시키거나 고의로 은닉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피고 2의 상속포기를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피고 1과 피고 2의 결론이 나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행위 시점이 상속포기 전이냐 후이냐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의 태양이다. 피고 1의 채권 추심은 처분이고, 피고 2의 대금 수령·입금은 관리에 그쳤다. 포기 후라도 은닉·부정소비에 해당하면 3호로 단순승인이 되므로, 시점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재산목록 누락은 언제 법정단순승인이 되는가
민법 제1026조 3호의 ‘고의로 재산목록에 기입하지 아니한 때’란, 한정승인을 하면서 상속재산을 은닉하여 상속채권자를 사해할 의사로 재산목록에 기입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2003다30968). 단순한 착오나 부지(不知)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사건 피고 3은 한정승인 신고 전부터 망인의 소외 3에 대한 부동산 매매대금채권의 존재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정승인 재산목록에 이를 기입하지 않았고, 신고 직후 소외 3과 매매잔대금 1억 4,000만 원 정산 합의까지 마쳤다. 법원은 피고 3이 고의로 재산목록에서 채권을 누락한 것으로 보아 단순승인으로 간주하였다.
실무 체크포인트
- 금전 수령은 수리 심판 고지 후로 미룬다. 피상속인의 채권 추심·변제 수령은 효력 발생 전이면 처분행위로 단순승인이 된다(민법 제1026조 제1호). 효력이 생긴 뒤의 처분은 손해배상 문제가 남을 뿐 3호의 부정소비에 해당할 때만 단순승인이 된다(2003다63586). 이 사건 피고 2처럼 대금을 받아 다른 상속인 계좌에 넣은 정도를 관리로 본 것은 그 사안의 판단이지, 수리 후 처분 일반이 관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사전에 안 채권은 재산목록에 빠짐없이 적는다. 신고 전부터 존재를 알던 채권을 사해 의사로 목록에서 누락하면 고의 누락으로 단순승인 처리된다(민법 제1026조 제3호, 2003다30968). 다만 인지는 출발점일 뿐이다. 인지에 더해 사해 의사가 인정돼야 하고, 정당한 처분(예: 상속비용 소진)으로 소진한 뒤 누락한 것이면 고의 누락이 아니다.
- 신고 직후의 정산·합의가 누락의 고의를 드러낸다. 재산목록에 안 적은 채권을 신고 직후 정산하면 사전 인지와 사해 의사의 정황 증거가 된다(2009다84936). 누락 채권은 신고 직후라도 함부로 회수하지 않는다.
- 차순위 상속인이 이미 승인했는지 확인한다. 포기로 차순위 상속인이 상속을 승인한 경우에는 제3호 사유가 있어도 승인으로 보지 않는다(민법 제1027조). 같은 순위 공동상속인 사이의 일이면 이 예외가 없으므로, 순위 구조부터 특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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