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법과 관습을 준거법으로 한 선박기간보험에서 보험자가 감항능력 결여로 면책되려면 결여·피보험자의 악의·손해와의 인과관계를 보험자가 증명해야 한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대법원은 결함과 선주의 악의를 인정하면서도 사고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며 면책주장을 배척했다(2000다21062 판결요지 [3]).
쉽게 말하면 — 해운회사가 부식을 다 고치지 않은 노후 화물선을 1년짜리 선박보험에 넣고 출항시켰다가, 배가 유빙에 부딪혀 좌초한 경우입니다(2000다21062 이유 1.가·나·라·바, 2.다). 회사가 배의 결함을 알고 있었더라도, 보험회사가 그 결함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점까지 증명하지 못하면 이 사유로 면책되지 않습니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3]). 이 기준은 영국의 법과 관습을 따르기로 한 선박기간보험에 대한 판결입니다.
어떤 선박기간보험에 이 판결의 감항능력 기준이 적용되나?
영국의 법과 관습을 준거법으로 지정한 선박기간보험에서, 대법원은 영국 해상보험법 1906 제39조로 감항능력 면책을 판단했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판결요지 [1]~[3]의 참조조문도 영국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 제39조 제4항·제5항뿐이다. 한국 상법의 해상보험 조문으로 감항능력 면책을 판단한 판결이 아니다.
선박기간보험은 일정한 기간을 정해 그 기간 동안의 선박 손해를 담보하는 보험이다. 이 사건 보험은 보험기간 1995. 10. 23. 12:00부터 1996. 10. 23. 12:00까지, 보험목적은 선체와 기타 기물이었다(2000다21062 이유 1.나). 보험가액과 보험금액은 각 미화 50만 달러였다(2000다21062 이유 1.나).
이 사건 약관은 해상 고유 위험, 기관 파열, 선체의 잠재적 하자 등으로 선박이 전손된 경우만 담보했다(2000다21062 이유 1.다). 이 전손에는 현실전손과 추정전손이 포함됐다. 약관은 영국의 법과 관습을 준거법으로 지정했다(2000다21062 이유 1.다).
자기 보험이 이 판결과 같은 범위인지는 다음 기재로 확인한다. 판결이 감항능력 면책 법리를 적용한 전제 두 가지이며, 둘을 모두 대조한다(2000다21062 이유 2.나).
- 보험증권·약관의 준거법 조항이 영국의 법과 관습을 지정하는지 본다(2000다21062 이유 1.다).
- 보험기간이 항해 단위가 아니라 기간으로 정해져 있는지 본다(2000다21062 이유 1.나).
담보 범위가 전손에 한정되는지는 감항능력 면책 요건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전손담보라는 사실은 추정전손의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두는 근거로 쓰였다(2000다21062 이유 3.다).
대법원은 영국 해상보험법 1906 제39조 제4항·제5항의 문언에 따라 선박 기간보험의 면책 법리를 설시했다(2000다21062 이유 2.나). 이 법리를 이 사건 선박의 사실에 적용한 판단은 따로 있다(2000다21062 이유 2.다·라). 판결 뒤의 영국법 변경이나 다른 판본의 약관에 같은 결론이 나오는지는 이 판결이 정하지 않는다.
감항능력은 무엇이며 항해보험과 기간보험은 어떻게 다른가?
기간보험에는 항해보험과 달리 감항능력의 묵시적 담보가 없는 것이 원칙이고, 피보험자가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한 경우에 한하여 보험자가 면책될 수 있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감항능력이란 선박이 항해 중에 통상 만나는 해상위험을 견딜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영국 해상보험법 제39조 제4항은 그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
「어느 선박이 부보된 해상사업에서 통상 일어날 수 있는 해상위험을 견디어낼 수 있을 만큼 모든 점에서 상당히 적합(reasonably fit)할 때에는 감항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대법원은 감항능력을 확정하는 확정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보았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특정 항해에서의 특정한 사정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항해보험
항해보험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감항능력 불비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을 인정한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항해보험은 특정 항해를 단위로 위험을 담보하는 보험이다.
기간보험
기간보험의 경우에는 감항능력의 묵시적 담보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묵시적 담보란 보험증권에 적지 않았는데도 피보험자가 지켜야 할 조건으로 법이 정해 둔 약속을 말한다. 제39조 제5항은 기간보험에서 해상사업의 어떤 단계에서이든 선박이 감항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묵시적 담보가 없다고 정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한 경우에 한하여 보험자가 면책될 수 있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이때 보험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대상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발생한 일체의 손해」다(같은 판결요지 [1]의 제39조 제5항 인용).
계약서에 적은 검사 조건
이 사건 보험증권은 보험개시일로부터 20일 이내에 한국선급의 현상검사를 받고 지적사항을 모두 이행하는 것을 명시적 담보조건으로 했다(2000다21062 이유 2.다). 대법원은 이 조건과 그 불이행을 감항능력 결여와 피보험자의 악의를 인정하는 사정의 하나로 들었다. 그 위반 자체로 보험자가 별도로 면책되는지는 이 판결의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
피보험자가 감항능력 결여를 알았다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피보험자의 악의는 결함의 원인 사실과 그로 인해 통상 위험을 견딜 수 없게 된 사실을 아는 것이고, 알면서 방치한 경우도 포함한다(2000다21062 판결요지 [2]). 여기서 악의(privity)는 영미법상의 개념으로, 피보험자가 감항능력 결여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원인 사실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 때문에 선박이 통상적인 해상위험을 견디어낼 수 없게 된 사실까지 알아야 한다.
대법원은 악의를 두 형태로 설명했다(2000다21062 판결요지 [2]). 두 형태 어느 것이든 악의에 해당한다.
- 감항능력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아는 것(positive knowledge of unseaworthiness)이다.
-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갖추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 사건의 피보험자는 선박 소유자인 선박회사였고, 보험계약은 선박관리 회사가 체결했다(2000다21062 이유 1.가·나). 대법원은 이 사건 선박이 사고 당시 감항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는 거의 모두 객관적인 사정이어서 선주가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2000다21062 이유 2.라). 선주에게 직접적인 수리요청까지 있었던 점을 들어 악의도 인정했다.
원심은 이 결여와 악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보험자의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은 이를 선박 기간보험의 감항능력 부재 면책에 관한 법리오해와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이라고 보았다(2000다21062 이유 2.라).
결함과 인식을 인정해도 사고와 인과관계가 없으면 어떻게 되나?
감항능력 결여와 피보험자의 악의가 인정돼도 그 결여와 보험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보험자는 이 사유로 면책되지 않는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같은 판결요지는 이 인과관계를 「손해의 일부나 전부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으로 설명한다. 결여와 악의만으로는 면책요건이 채워지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결여와 악의를 인정하면서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며 면책주장을 배척했다(2000다21062 판결요지 [3]).
이 사건 선박은 1996. 1. 31. 중국 뉴잉코우항을 출항해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1996. 2. 1. 유빙과 조류에 밀려 좌초했다(2000다21062 이유 1.라). 좌초 뒤에도 예인되기까지 40시간 이상 파도와 유빙에 계속 부딪히며 선체 외판, 기관실 기계, 프로펠러, 방향타 등이 손상됐다(2000다21062 이유 1.바).
대법원은 원심 인정 사실에 따라 사고 원인이 유빙과의 충돌로 외판에 구멍이 생겨 침수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라고 보았다(2000다21062 이유 2.라). 앞서 본 구체적 감항능력의 부재와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도 없었다. 그래서 면책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전손만 담보하는 보험에서 보험사고인 추정전손의 요건·평가·비용과 그 증명은 영국법 적용 해상보험의 추정전손과 수리비 증명에서 설명한다.
면책요건은 누가 어떤 자료로 증명하나?
감항능력 결여, 피보험자의 악의, 결여와 보험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는 모두 보험자가 증명해야 한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증명책임이란 어떤 사실이 증명되지 않을 때 그 불이익을 지는 당사자의 부담을 말한다. 세 요건 가운데 하나라도 증명되지 않으면 이 면책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여와 악의를 받친 자료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감항능력 결여와 악의를 인정하며 든 기록상 자료와 그 자료가 보여 준 사실은 다음과 같다. 대법원은 이 사정들을 종합해 판단했다(2000다21062 이유 2.다·라).
- 보험증권(갑 제2호증의 1)은 선박이 1974년 건조된 노후선이고 현상검사와 지적사항 이행이 명시적 담보조건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2000다21062 이유 2.다).
- 한국선급 검증보고서(갑 제8호증)는 선령에 비해 나쁜 상태이고, 1996. 5. 2.까지 23항목의 지적사항을 이행해야 항해에 제공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2000다21062 이유 2.다).
- 수리신청(갑 제10호증, 1995. 11. 10.)은 1·2·3 이중저 발라스트 탱크가 부식으로 즉시 수리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사고 전에 수리된 흔적이 없었다(2000다21062 이유 2.다).
- 사고 직후 선박을 조사한 회사의 서면(을 제11호증)에는 선장과 기관장이 선주에게 선박과 해상의 상태에 비추어 항해가 적당하지 않다고 건의했다는 선원 진술이 있었다(2000다21062 이유 2.다).
- 사고 당시 선장도 증인으로 나와 이 선박을 뉴잉코우항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선주에게 말한 사실을 인정했다(2000다21062 이유 2.다).
- 선박의 타축 등에 사고 이전 균열로 인한 용접 흔적이 있었고, 화물적재중량 1,601t에 1,348t을 실어 거의 만재 상태였다(2000다21062 이유 2.다).
선주가 검사 뒤 발전기·건현표 등 일부를 수리하거나 교체했지만, 한국선급의 지적사항을 완전하게 수리하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함께 인정됐다(2000다21062 이유 2.다).
인과관계를 받칠 자료
인과관계는 사고 원인 자료로 증명해야 한다. 이 사건 기록에서는 사고 원인이 유빙 충돌에 따른 외판 손상과 침수로 추정될 뿐이었고, 결함과 사고를 잇는 증거가 없었다(2000다21062 이유 2.라). 결함과 악의를 보여 주는 위 자료가 많았어도 이 요건이 비어 면책주장이 배척됐다.
실무 체크포인트
- 보험증권·약관의 준거법 조항이 영국의 법과 관습을 지정하는지와 보험기간이 기간으로 정해져 있는지를 먼저 대조한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이유 1.나·다).
- 보험자가 감항능력 결여로 면책을 주장하면 결여·피보험자의 악의·결여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 세 요건을 각각 어떤 자료로 증명하는지 본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
- 피보험자의 악의에는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조치하지 않고 내버려둔 경우도 포함된다(2000다21062 판결요지 [2]). 선급 지적사항·수리요청·선장 건의를 받은 기록이 그 판단 자료가 된다(2000다21062 이유 2.다·라).
- 사고 원인 조사 자료가 결함과 사고를 잇지 못하면 결함과 악의가 인정돼도 보험자는 이 사유로 면책되지 않는다(2000다21062 판결요지 [1]·[3]).
- 이 사건의 「보험개시일로부터 20일 이내」 현상검사와 「1996. 5. 2.까지」 지적사항 이행은 이 사건 보험증권과 검사보고서의 조건이며 법정기간이 아니다(2000다21062 이유 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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